서론

자해(Self-injury, Self-harm)는 스스로 몸에 상처를 내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여러 이유에 의해 촉발되지만, 본 문서에서는 주로 우울장애(Depressive disorder)에 의한 것을 서술합니다. 필자는 독자분들께 자해라는 행위에 대해 보다 상세하거나 혹은 일반적이지 않은 다른 접근 방법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본 문서는 다른 시각의 접근을 알아보고 싶은 독자분들, 혹은 이러한 것의 개념에 대해 알고 싶은 독자분을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필자는 그 어떤 전문가도 아닙니다. 본 문서에 적힌 내용을 과도하게 신뢰하지 마세요.

본론

관련 지식이 있으시다면 아실 수도 있지만, 대중의 인식과는 달리 의외로 자해라는 행위 자체는 자살 의도와는 거리가 먼 행위입니다. 자해를 하는 사람은 보통 자살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Self-harm, Self-injury 등의 용어는 기본적으로 NSSI. NonSuicidal Self-Injury로 인식됩니다. 다만 물론 자해는 자살의 강한 징후입니다. 자해를 한 사람의 자살률은 유의하게 높습니다.). 하지만 대중은 대체로 자해=자살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자해자 중 일부는 ‘사실은 죽을 의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죽으려고 자해라는 행위를 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물론 실제로 자살할 생각으로 자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해란 죽으려고 하는 행위이다’ 라는 대중에 퍼진 인식 때문이기도 하고, 일부 사람들에겐 흔히 패션 우울증이라 불리는 것의 앰블럼 같은 개념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물론 패션 우울증이라는 것은 소수이며 일반화할 수 없습니다. 자해가 주의를 끌고 동정심을 위한 전략이라는 가설은 자주 주장되었으나 명백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자해라는 것은 죽기 위해서도 아니면 왜 하는 것일까요? 자해는 불안 및 우울 등의 강한 스트레스를 일시적으로 완화하기 위한 대처기제(Coping Mechanism, 스트레스를 막기 위한 의식적인 기제)입니다. 즉 자해라는 건 죽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행하는 스트레스 완화 작업입니다. 살도록 프로그램된 인간이 살기 위해 하는 생존 행위입니다.

하지만 자해와 스트레스 완화에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이에 관한 기전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베타 엔도르핀으로 보입니다. 엔도르핀은 매우 강력한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세 종류로 나뉘며 베타 엔도르핀은 그 중 하나입니다. 엔도르핀은 어지간한 마약류보다도 강한 매우 강력한 진통 효과를 갖습니다. 주로 사지가 떨어져 나가는 등 매우 큰 통증을 느낄 때 해당 통증을 줄여 판단력을 유지하고, 쇼크사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분비됩니다. 연구에 따르면 자해 전의 베타 엔도르핀 수치는 자해 후 베타 엔도르핀 수치보다 현저히 낮습니다. 또 자해 경험이 있는 사람의 베타 엔도르핀 수치는 일반인에 비해 낮습니다. 그리고 베타 엔도르핀이 낮은 사람들은 “고통을 느껴야 할 필요감"을 느꼈다고 보고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종합적으로 분석해보면, 자해 행위는 베타 엔도르핀을 의도적으로 분비하게끔 촉진시키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생존을 위한 합리적인 전략일 수 있습니다.

결론

본 문서에서는 자해에 대해 소개하고, 분석하였습니다. 폐쇄된 환경은 개념등을 기이하게 발달시키곤 합니다. 필자는 그것이 한국에서도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자해에 대해 부담을 주는 환경은 자해자들을 구석진 곳에 몰아넣고, 그들은 잘못된 방향으로의 개념을 발달시킵니다. ‘자해는 죽기 위해 하는 것이다’라는 통념이 특히 그렇습니다. 그렇게 강하게 대중에 새겨진 잘못된 생각은 심지어 실제 자해자마저 감화시켜 ‘자해라는 것은 죽기 위해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끔 만듭니다. 그리고 심지어 자살 의도가 없는 자해 행위는 ‘부끄러운 것’, ‘좀 모자란 것’, ‘가짜 자해’ 등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런 것이 한국의 자살률을 이렇게까지 높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 필자는 자해라는 행위가 널리 퍼진 것과는 달리 그런 이들을 케어하기 위한 것이 미흡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적지 않은 상담가들은 자해 행위를 ‘막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런 행위를 한다 고백하면 머지않아 큰 일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고 경찰이나 부모에게 연락하는 듯 다소 잘못된 대응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문서를 읽어주셨으면 아시겠지만, 그러한 행동은 오히려 살기 위해 내민 손을 짓누르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자해는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에 가까우며, 죽기 위해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살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전문적인 상담사들은 다짜고짜 이러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해라는 행동에 대해 적절한 수준의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지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압니다. 다만 그러한 사람들도 티를 내지 않을 뿐 우회적으로 막으려 하거나, 내담자에 대해 오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간혹 전문가가 아닌 상담사가 있을 수 있고(상담사라는 이름이 남용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관련 지식이 없는 내담자는 상대의 생각에 동조하게 됩니다. 내담자와 상담사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우열이 나뉘어 있고, 내담자는 상담사의 편향을 인식하고 올바르게 처리할만큼의 정신 상태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Reference